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집에 앉아서 집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나를 놓칠 때가 있다
시 씁네, 하고 스스로 고립될 때가 있다
마음 놓고 사무칠 수도 없을 때가 있다
느닷없이 검은가슴물떼새가 생각날 때가 있다

자주쓴풀이 자주 떠오를 때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가지가 찢어지도록 밝은 달이
비틀거리면 우짜노, 하면서
나를 비춰 주신다
■그래, 그럴 때가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오전이 있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저물녘이 있다. 밥때가 지나도 밥 생각이 나지 않는 오후가 있고, "집에 앉아서 집에 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다 가만히 자기 이름을 혼자 불러 보는 그런 새벽이 있다. "내가 나를 놓칠 때가 있다". 그렇게 휘청거릴 때가 있다. 그렇게 "비틀거"릴 때가 누구나 있다. 그러나 서러워하거나 외로워하지 마라. 그럴 때면 "가지가 찢어지도록 밝은 달" 같은 누군가가 "우짜노",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 줄 것이니, 이 세상 어딘가엔 그런 사람 하나 꼭 있을 테니.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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